오늘 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고관대작들.
참선비가 없었던 것도 불행이지만.벼슬에서 물러나면 만세에 교육할 가르침을 전하여 학자들이 큰 꿈을 깨치게 하는 사람이다.
옛날이야 선비라는 남편은 집안 살림을 모르고 아내가 살림을 하던 시절이어서 어진 아내는 집안의 가난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 경우가 많았을 터이다.그러나 선비(儒)란 모두 올바른 유자(儒者)는 아니었다.특히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온갖 개혁적인 저서를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도 두 분은 유사점이 많은 학자요 참선비였다.
자나 깨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던 애국심으로 보거나 두 분은 많이 닮은 점이 많다.이른바 참선비란 조정에 나아가면 한 시대의 도(道)를 행하여 우리 백성들로 하여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고.
나라가 이런 상태로 가서야 되겠는가.
어지러운 시국을 바로잡을 참선비를 대망했건만 참선비를 발탁하여 국난을 해결할 군주도 없었기에 나라는 끝내 망하는 비운을 당하고 말았다.민주화의 임계점과 회귀불능점(回歸不能點)을 확고부동하게 넘은 것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화 이전에는 ‘연합적 경쟁의 정치를 통해 민주화를 위해 매진하였다.문민정부 출범 30주년을 맞아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올해로 문민 민주주의 30주년을 맞는다.
민주화 초기의 연합적 민주주의 정신과 정치를 돌아보길 호소한다.‘제2의 건국 ‘생산적 복지처럼 김영삼과 김대중은 어떤 부분은 용어까지 동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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